2024. 8. 11. 21:42ㆍ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날마다 함께 살기
목사님이 몇 주에 걸쳐 계속 이 주제로 설교하고 계신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그리스인 (헬라인) 의사이자 역사가인 누가의 시선을 따라서 우리도 그가 만난 예수님을 만나는 여정 함께 한다.
우리가 붙드는 '사실'은 우리 기독교인들만의 사실이 아니다. 보편적 사실, 즉 전세계적 사실이자 이 지구가 생겨난 이후 사람의 역사에 남겨진 사실이다. 그래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마귀는 이것을 아예 가려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더 대놓고 가린다. 이전에 있던 BC와 AD는 Before Christ(예수님 이전), Anno Domini(주님의 해)라는 의미인데 지금 아이들은 이 개념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보니 BC를 BCE AD를 ADE로 바꿔 놓았는데 줄이기 전의 말을 보니 Before the Common Era(서기) 라고 되어 있어 아예 Chirst라는 말을 빼버렸다. 역사에서 예수님 지우기 운동이다. 누가 이 짓을 하겠는가? 뻔하지 않겠는가? 그게 누구든 사단이 배후에 있어 이런 짓을 하며 예수님을 지워버려 예수님을 그저 이스라엘의 신화 속의 인물 정도로 여기게 만들려는 수법이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만날 방법이 없다. 근데 하나님은 있다고 하신다. 성경에 기록해 두셨다. 아들을 보내실 것이라고 그리고 예수님도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하셨다. 나타내보이신 하나님, 태초부터 계셨던 그분, 로고스이신 그분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내 보이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셨다. '내가 내 형상을 따라 만든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나를 보이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 이 간절함을 어떻게 해결할까?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하므로 믿지 못한다고 하고 내가 아닌 세상을 쫒아 가는데 이를 어떻게 해야하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이시는 것이 너무 간절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 훨씬 더 간절했다.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이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 즉 예수님을 검증하기 위해 몇 가지 큰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을 검증해 나간다.
- 예수는 정말 사람이었나?
이를 검증하기 위해 그가 처음 확인한 것은 예수님의 족보였다. 족보는 거짓말을 못 한다. 내가 나의 족보를 보면 엄마, 아빠, 동생 그리고 우리가족뿐 아니라 친척들도 기록되어 있다. 근데 만약 거기에 잘못된 기록이 있다면 우리는 그 기록의 진실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수정을 요청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예수님도 족보가 있었다.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분명한 족보가 존재했다. 예수님의 아버지(사람) 요셉, 그리고 요셉의 아버지, 요셉의 할아버지 이렇게 계속 따라가다 보면 다윗이 나온다. 다윗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아브라함이 나오고 셋이 나오고 아담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아담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하나님 바로 다음에 예수님 이렇게 나오지 않고 예수님은 요셉 다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확히 인간의 몸을 입고 다윗이 계보에 오셨다. 이것은 성경대로 이루어진 사실이다.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이다라고 족보가 시작되었따면 우리 사람으로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람으로 아기로 태어나셔서 젖 먹고, 똥도 싸고, 무럭 무럭 자라고, 형제들과 장난도 치고 그렇게 우리와 동일한 모습으로 자라나셨다. 우리는 이렇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창1:26-27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면서까지 우리를 만나려하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만나러 오신 것이다. 깨든지 자든지 우리와 함께 살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계속된 시리즈의 말씀을 들어오고 있는데 오늘 처음으로 이런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것도 그저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역사 속에 있다고 하니까 성경에 있으니까 이 수준에 그쳤던 것 같다. 하나님이 나를 만나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실제라면 정말 눈이 뒤집히고 가슴이 벌렁거리고 감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만나러 이 땅에 오신 그 마음과 그 사실 앞에 제대로 서면 의미없이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 수 없다.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축 처지고 무너졌던 마음이 일어설 수밖에 없다.
나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다!
케이블채널의 기독교 방송 중 한 프로그램을 영상을 보았다. 한 목사님과 개그우먼 이성미와 다른 참가자들이 나와서 기독교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저는 체험이 있어서 하나님을 믿기는 하는 것 같은데. 이것이 흐려지기도 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이런 고민을 나누자 이성미씨가 목사님께 묻는다. 그러자 목사님은 '저도 목사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믿죠. 그런데 하나님을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 영상을 보자 마음이 참 안타까웠다. 목사라는 사람도 저렇게 얘기하는데 다른 일반인들은 오죽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NO!
아니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엉성한 신이 아니다. 우리에게 자신의 보이지 않는 존재를 증명할 길을 주지도 않고 그저 믿으라고 하시는 엉성하고 흐리멍텅한 신이 아니다! 확실히 있다! 그 방법이 있으니 그 방법을 따라 와라! 그러면 나를 만날 수 있다고 하신다! 그게 바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이다.
왜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중요시 여기는가?
그것은 이 세상에 없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인간이 넘을 수 없는 한계 그것이 죽음이다. 근데 그 죽음을 넘고 그 죽음을 이기는 방법, 그게 바로 부활이다. 그것을 인간의 역사 속에 직접 보이셨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제자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인가?
그들이 놀라서 그분 앞에 엎드려있기만 했을까? 아니! 그들은 그분이 진짜 자신들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따랐던 자신들의 랍비였는지 그 몸을 만져봤을 것이다. 체취도 맡아 봤을 것이다. 도마처럼 손의 못자국도 만져보고 옆구리의 창자국도 만져봤을 것이다. 그리고 도마처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비슷한 고백을 했을 것이다. 이분이 육체로 부활하셔서 자신들의 앞에 나타나셨고 그것을 보고 만진 순간, 그들은 하나님을 만져버린 것이다. 영원을 만진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봐 버린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경외하고 두려워하던 여호와 하나님, 서기관들도 그 이름이 나오기만 하면 두렵고 경외하여 붓을 빨았던 정도의 그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의 눈 앞에 육으로 부활하신 몸으로 서 계신 것이다.
얼마나 기절초풍했을까? 얼마나 눈이 뒤집어졌을까? 얼마나 그들의 가치관이 와장창 깨져버렸을까? 자신들이 3년 이상을 함께했던 그 랍비가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 그들은 얼마나 떨렸을까? 얼마나 경외와 신비감에 사로잡혔을까?라는 상상을 해 본다. 우리도 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나는 제자들과는 2000년이 넘는 시간의 갭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만날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한가?
YES!
가능하다! 어떻게?
제자들과 동일하게 그 부활의 사실 앞에 서야 한다. 제자들의 죽음,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며 기꺼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던 그들의 외침의 핵심 앞에 서야 한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던 그 장면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그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제자들처럼 만나게 해달라고 성령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진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아보는 것! 그것이 진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시고 죽고 부활하신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는 것!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것이고,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소원이다.
나는 이 글을 하나님 앞에 쓰고 있다. 그리고 나와 동일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진짜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 날마다 함께 할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다.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실 것을 믿는다.
기독교인들에게 물어보라!
'진짜 부활을 믿으세요?'라고 그러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그중 대다수는 믿는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동의한 것뿐이다. 진짜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나님이신 것을 안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살 수 없다. 이대로 살 수 없다. 제자들처럼 변할 수 밖에 없다. 제자들과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아무리 2000년의 갭이 있고 우리가 직접 예수님을 만져보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성령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동일하게 만나도록 도우신다.
내가 지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 부활의 사실 앞에,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제자들이 그분을 하나님으로 알아보는 그 장면으로 들어가, 성령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것뿐이다!
이 땅에 오셔서 죽고 부활하신 그분이 진짜 하나님이심을,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달라고
그래서 도마처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중심에서의 고백과 굴복이 나오게 해달라고 엎드려 겸손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다!
고전 12:3 하나님으리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ㅇ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느니라
아멘 아멘 아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날마다 함께 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의 방점은 하나님과 날마다 함께 사는 것 (0) | 2024.08.26 |
---|---|
그 자리로 가서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0) | 2024.08.21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확실한 방법(4) (2) | 2024.08.10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확실한 방법(3) :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 (0) | 2024.08.08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확실한 방법(2) (0) | 2024.08.07 |